2008년 06월 22일
촛불집회..
5월 초 이후 두달이 다 되어 가도록 촛불집회의 불꽃은 사그라 들지 않고 있다.
5월 17일.. 형의 결혼식날 이제까지 있었던 촛불집회 중 가장 큰 규모의 집회(그땐 촛불문화제란 용어가 더 많이 쓰임)에 있을 거란 말에 처음으로 난 청계광장에서 집회에 참가했었다.
그땐 촛불문화제란 용어에 어울리게 항의집회라기 보다는 무슨 공연에 더 가까웠던.. 경찰들이 있었으되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과 별다른 충돌도 없었고 그저 평온하게 구호를 외치고 이승환, 김장훈 등 가수들의 공연을 보며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들과 함께 양초를 들고 있었다.
한 3시간쯤 있다가 거의 밤 10시쯤에 집에 들어갔었던.. 대학다니던 시절인 1999년 이후로 그런 대규모 집회에 참석하는 건 처음이었다. 경찰, 언론, 온라인 등의 참가인원 셈법은 차이가 커서 몇명 모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암튼 수만명이 모였을 듯하다.
근데 그러다가..
이러한 꾸준한 촛불문화제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런 국민의 소리를 개무시하고 장관고시를 강행하려고 하자 촛불문화제는 말그대로 촛불집회로 돌변하며 보다 과격한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같이 집회가 이뤄지는 것은 물론 사흘 낮밤.. 즉 72시간을 풀타임으로 촛불집회가 이뤄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집회속에 시민과 전경은 마침내 평화로운 공존이 깨어져 폭력적으로 대치하게 되었다.

사실 5월 17일 이후 난 얼마간 촛불집회에 대한 관심을 접어두고 있었는데 언젠가 부터 집회가 이렇게 폭력적인 양상으로 바뀌게 된데 상당히 놀랐다. 물론 이러한 양상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정부에게 있었다. 좋게좋게 평화적, 합법적인 집회로 의사를 표현하려 했지만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멋대로 일을 관철시키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상황은 위엣 사진에서 처럼.. 집회참가자들이 경찰들과 대치하다 이렇게 심한 부상을 입는가 하면 전경들한테 어떤 서울대 여학생이 군화발에 짓밟히는 집단구타를 당하기도 하였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시민과 경찰, 특히 전경들과의 마찰과 폭력성이 극에 치닫고 있던 것이다.
점점 집회가 감정적으로 고조되고 87년 6월항쟁 기념일이 다가옴에 따라 촛불집회는 더욱 열기를 띄기시작해서 마침내 6월항쟁 21주기인 6월10일 집회는 서울에 100만 촛불이 모이자는 구호아래 최고조에 달하게 되었다.

그날 나도 갔었는데 지하 시청역에 내리니 과연 사람들이 많았다. 청계광장 쪽으로 나가는 통로쪽으로 갈수록 사람이 많아서 자못 그날 집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지난번 혼자 갔을때의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이번엔 다음 재테크 카페인 텐인텐의 '아미방'게시판 사람들과 동참하기로 생각했다. 나의 도착시간이 원래 모임시간보다 다소 늦어 얼른 서둘러서 통로로 나서려는데 어찌된일인지 사람들이 나가질 못하는 것이었다.
왜이러나 궁금해 하면서도 어찌저찌 꾸역꾸역 올라갔다. 왠지 거리에 사람들로 꽉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해 하면서..
아니나 다를까 지하로에서 나와보니 거리는 차도고 인도고 할 것없이 사람들로 가득찼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리를 걷는 것은 아마 난생처음일 듯.. 적게 잡아도 50만명은 넘을 것 같았다. 청계광장 쪽 뿐아니라 시청앞 서울광장 쪽도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있을 테니까.. 평소같음 5분이면 청계광장 소라기둥까지 갔겠지만 이날은 사람이 너무 많아 20분은 넘게 걸렸던 것 같다. 다행히도 가다보니 조금씩 여유있는 거리공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암튼 아미방 사람들과 합류해서 이후 한 3, 4시간 정도 동안 같이 구호를 외치고 촛불을 들며 집회에 동참했다. 청계광장에서 2시간정도 집회를 하고 거리행진을 하였는데 이날 서울 중심거리는 촛불을 든 집회참가자들의 것이었다. 이 거리를 지나는 차는 단 한대도 볼 수 없었다. 차도고 인도고 모두 그냥 도보하는 사람들이 장악한 것이다. 음.. 언제 다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런지..
거리 행진을 하다가 이순신 동상앞을 지나가려는데 웬 철제 바리케이트 같은게 보였다. 첨엔 어두워서 그게 그냥 철재로 된 임시 담벼락같은 건줄알았다. 공사장에서 쓰는.. 경찰대신 그런 임시 구조물로 바이케이트 친거라 생각했다.
근데 알고 보니 그게 컨테이너 였다. ㅡㅡ; 언론과 인터넷 게시판은 그러한 정부형태를 조롱이나 하듯이 그 컨테이너 구조물(?)에 '명박산성'이라는 명칭을 선사했다. 그 명박산성 덕분에 굉장히 대규모의 집회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단 한명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툼이나 폭력행위도 없었다. 그 많은 인파가 몰렸는데도 말이다. 쓰레기는 대학이나 동호회, 조합 등 각각 준비해온 쓰레기봉투로 웬만한 건 거의 자발적으로 치우는 성숙함을 보이기도 했다. 6월초에 있었던 집회중 폭력사태나 불미스런 일들은 먼 옛날의 얘기같았다.
서울에서만 약 70만명, 전국적으로 대략 100만명이 참가했다는 6월 10일 대규모 촛불집회의 영향은 컸다. 정부가 이러한 국민들의 외침에 놀랐던 탓인지 미국과의 추가협상을 시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재협상이 아닌 추가협상이어서 매우 실망스러운 조치이긴 하지만..
그 날 이후 나도 다시 생활로 돌아와 열흘넘게 촛불집회에 대한 관심을 다시금 좀 멀리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도 촛불은 계속 밝혀지고 있다. 6월10일이후 집회의 규모는 좀 작아졌다고는 하지만 정말 국가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시민들은 거리에 나와 꾸준히 계속해서 촛불을 들고 있는 것이다.
요즘 들어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대한민국은 한두명의 영웅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수의 멋지고 열정적인 사람들로 인해 움직혀가고 있는 것 같다.
# by | 2008/06/22 02:24 | 일상 | 트랙백 | 덧글(0)




